아내의 만삭사진
토요일. 내가 이곳 휴스턴에 도착한 후 최고의 날씨였다.  버터없이 튀겨진 팝콘처럼 아삭아삭한 공기가 따뜻한 햇볕과 함께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이곳의 이 날씨를 기억한다. 작년 이맘때 지금의 자리를 위한 인터뷰를 하러 이틀간 머물렀을 때 그때의 날씨였었다. 긴장된 하루동안의 인터뷰과정을 마치고, 이 도시를 돌아보면서 이 쾌적한 날씨를 아내에게도 느끼게 해줄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었다. 1년이 지났고, 난 그 거리를 아내와 아내의 몸속에 아이와 함께 셋이서 걷고 있다. 

딱히 볼거리도 갈곳도 없는 건조한 도시속에 저렴한 포닥의 일상. 입맛이 없어도 음식솜씨 좋으신 장모님 음식도 구해줄 수 없고, 고급스러운 리조트에가서 편안하게 여행한번 못한채로 임신의 막달이 된 아내. 아내가 만삭사진만은 꼭 찍고 싶다고 하고, 손수 아이디어를 내서 박물관과 야외조각공원에서 찍자고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DSLR 카메라를 들고 양쪽 바지주머니에 렌즈를 찔러넣고 나섰다.

박물관에서는 사나운 아줌마/아저씨들이 눈을 부라렸고, 밖에서는 밋밋한 콘크리트 배경에 강한 직사광선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내는 만족해했다. 언제나 불안정한 과학자의 아내로 살면서도 늘 웃음으로 격려해 주고, 맛있는 음식에다 시의적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녀 덕분에 이곳에 무사히 도착해서 지금까지 즐겁게 살고 있다. 그리고, 곧 찾아올 새식구 까지 더해서 이곳에서의 삶은 누구보다도 풍족하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잡았다. 한때는 이 낡은 캐논450D와 목이 늘어질정도로 무거운 시그마 1.8로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연마했던 때도 있었었다. 지금은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도 자주 담지 못하고, 그저 일기대신 그날그날의 식탁을 찍는것으로 대신해 왔다. 이젠 그나마도 잊은채로 바쁘게 하루하루 지나치고 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영국의 척박한 유학생 생활을 겪으면서 생긴 삶의 철칙이 "있는걸로 최대한!"으로 바뀌면서 더이상 장비에 연연해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열정도 가라앉아버린 것은 아닐까. 가진 재화를 투자해서라도 더 성장하길 바라기 보다는 그저 가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소박함으로 줄어든 것이리라. 진부하게도 시간을 탓해보지만, 그것이 내 삶의 에너지가 쪼그라들었기 때문은 아닌가 다시 돌아본다.

아이가 나오기까지 두달도 안남았다. 그때까지 무언가 이루어야 겠다는 마음이 조급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내의 행복한 얼굴이면 충분하다. 그녀의 웃음이 내 가족을 살아숨쉬게 한다. 



by 양사나이 | 2012/03/26 13:08 | 혼잣말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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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Eboli at 2012/04/09 23:27
오.. 축하해요!!! 사진속 모습이 참 아름다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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