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아내의 생일이라고 한국의 동생이 선물을 보내왔다. 언니네 이발관 5집과 보컬 이석원의 수필집 '보통의 존재'가 알라딘 박스에 담겨 바다를 건너왔다. 반갑고 고맙다. 이석원의 글솜씨는 잠깐잠깐 들리던 그의 일기장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음악도 mp3로 듣고 있었지만, 막상 손에 쥐어지는 CD의 느낌은 분명 달랐다. 지금도 책이나 많은 논문들을  pdf로 구해서 컴퓨터 화면으로 읽고 있지만 그들이 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점점 더 형체없는 디지탈 화일들이 많은 것들을 대체하고 있지만, 손에 쥐어지는 그 감촉과 질감만은 어느 것도 대신할 수 없다.

아내의 선물로 왔지만 내가 더 자주 펴보고 더 자주 듣게된다. 점심을 먹고 싸늘한 집의 유일한 따듯한 곳인 난로앞에 마주보고 앉았다. 아내는 뜨개질감에 집중하고 나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CD플레이어를 찾아서 CD를 넣었다. 그리고, 산문집을 폈다.

그의 일기를 웹상에서만 봤을때와 종이위에 가지런히 인쇄된 글자로 읽을 때, 동시에 귀에 가득 그의 목소리가 '가장 보통의 존재'를 노래하고 있을 때 난 온전히 그와 마주하고 대화하고 있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의 글은 서걱거린다. 그의 목소리가 주는 황량함 처럼 삶의 기대가 크지 않은 사람이 그래도 어쩔수 없이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애처로움이 묻어난다. 지난한 가족사를 이야기하고, 자기가 살아온 삶의 상채기들을 무덤덤하게 중얼거리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멀리하는 사람들에게 좀더 다가와 달라고, 나는 날카로운 사람이라기 보다 너무 연약하고 섬세한 사람일 뿐이라고 호소한다. 40에 접어든 그에게 가족과 사랑은 즐거움과 기쁨의 추억 보단 오히려 고통과 슬픔의 자취들이다. 그러기에, 그 중에서 몇안되는 즐거운 기억들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인간의 몸이 너무 빨리 늙어 마흔이 넘어서는 여생과 다름없다고 한숨쉬며 말하는 그를 너무나 동감했다. 그와 나의 차이는 고작 삼사년 남짓. 나도 그리 멀지 않았구나 싶었다. 매년 달라져가는 육체를 질질끌고서, 달팽이처럼 짐을 짊어지고 떠돌아다니는 나의 삶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그가 이 앨범을 1년 가까이 고치고 또 고치면서 추구했던 음악과 같은 목표가 나에게는 뭘까 싶었다. 수많은 사람을 괴롭혀가면서 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겨울밤 우울의 바닥에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자문해보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다. 논문을 빨리 끝내자. 나머지는 그 다음에 어떻게든 되겠지.

책을 반쯤 읽다 난 유희열과 이석원을 비교해보았다. 가난한 음악인이었고, 슬픈 가족사를 (그 둘의 크기를  비교할순 없겠지만) 몸안에 가두고 살아가는, 그리고 이제는 성공한 뮤지션으로 마흔에 올라선 그 둘의 이미지는 극명하게 다르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어 낸걸까. 그리고, 그들과 달리 정말 보통의 존재인 나는 그때ㅡ즈음엔 어디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선명한 노란색의 책표지와는 달리 이석원의 수필집은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아 있다. 그곳에서 내자신의 많은 부분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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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부럽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은 그만큼의 솜씨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왔기 때문이란걸 안다. 내가 나이를 먹고 알게된 것은 딱 그만큼이다.


 






by 양사나이 | 2010/02/05 02:09 | 염소의 되새김질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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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Itgling at 2010/12/17 19:19

제목 : 존재감 없는 나
전 존재감이 없나봐요 밖이나 잇글이나.. 씁쓸하네.....more

Commented by 잇글링 at 2010/12/17 19:19
[잇글링] おんがく♡【Р】님이 [존재감 없는 나]을(를) 아랫글로 연결하셨습니다. (보러가기 : http://www.itgling.com/spot/359416 )
Commented by at 2013/08/08 12:15
안녕하세요 달출판사입니다. 이번주 토요일 3시(8/10), 광화문교보에서 이석원 신작 장편소설<실내인간> 출간 기념 사인회 있답니다. 사인받으시면 이석원 작가님이 직접만든 책갈피와 <보통의존재>미니북도 드려요~ :) 꼭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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